안녕하세요. 공동법률사무소 KY파트너스 정동욱 대표변호사입니다.
공공기관과 계약을 맺고 납품과 설치를 모두 마쳤는데, 몇 년 뒤 수사기관이 "입찰 자격을 속였으니 그동안 받은 대금 전부가 사기 피해액"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계약 건수가 많고 기간이 길수록 금액은 커집니다. 사기로 인정되는 이득액이 5억 원 이상이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경법)의 가중처벌 규정이 문제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서로 독립된 범죄의 금액을 언제나 합산하는 것은 아니므로, 각 공소사실과 범죄의 단위를 구별해야 합니다.
제가 다른 변호인들과 함께 변호인으로 참여한 사건이 이런 경우였습니다. 1심은 128억 원이 넘는 대금 전부를 편취액으로 보아 사기 부분을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항소심인 고등법원은 2022년 이 부분을 뒤집어 특경법 위반(사기)과 판결에서 특정한 사기 부분을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이 글은 부산고등법원 창원재판부의 2022년 5월 20일 선고 항소심 판결을 기준으로, 무죄로 판단된 사기 부분을 설명합니다. 다른 죄명에 대한 유죄 판단이 함께 있는 사건이므로 사건 전체에 대한 무죄를 뜻하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128억 원대 사기 혐의가 어떤 이유로 무죄가 되었는지, 그 판단 과정을 차례로 설명드립니다.
1. 증명서를 거짓으로 발급받아 수년간 관급계약을 체결하고 대금을 받았다는 것이 공소사실이었습니다
피고인은 전시물·간판·조형물 등을 제작·설치하는 회사의 실질적 운영자였습니다.
공공기관이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을 구매할 때에는 그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중소기업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를 확인해 주는 서류가 직접생산확인증명서입니다. 근거 법률은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판로지원법)입니다.
검사는 피고인이 다른 사람의 공장을 빌린 것처럼 서류를 꾸미고 실태조사 때 설비를 가져다 놓는 방법으로 증명서를 발급받았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증명서로 수년간 30여 건의 관급계약을 체결한 뒤 실제 제작·설치는 하도급업체에 맡겼다고 했습니다.
검사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회사에 직접 생산할 의사와 능력이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담당 공무원을 속였고, 착오에 빠진 공공기관들로부터 계약 대금을 받았으니, 받은 대금 전부가 편취액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계산한 금액이 128억 원을 넘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형량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이 사기 부분이었습니다.
2. 1심은 "직접생산은 계약의 본질"이라며 대금 전부를 편취액으로 보았습니다
"증명서가 부정발급된 것을 알았다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계약 담당 공무원들의 이런 진술이 1심 판단의 출발점이었습니다. 1심은 직접생산 의무가 계약의 본질적 내용이고, 발주기관이 계약을 체결·유지하고 대금을 지급할지 판단하는 기초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하도급으로 만든 제품은 직접 생산한 제품과 같다고 볼 수 없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습니다. 하도급업체의 마진이 끼어들면 발주기관이 그만큼 비싼 값에 납품받을 위험을 떠안게 된다는 것입니다.
납품된 제품에 하자가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사기죄는 기망에 의한 재물·재산상 이익의 취득을 본질로 하고 현실적인 재산상 손해 발생을 별도로 요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죄 판단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그 결과 1심은 128억 원이 넘는 대금 전부에 대해 사기 부분을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3. 변호인은 "자격을 속인 것과 대금을 가로챈 것은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항소심에서 변호인은 사기 부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 계약 체결 과정에서 입찰 참가자격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사정이 있더라도, 그것만으로 대금을 편취했다고 볼 수는 없다.
- 피고인에게는 계약을 이행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고, 실제로 계약대로 이행을 마쳤다.
- 따라서 담당 공무원을 기망해 대금을 받았다거나 편취의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
쟁점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발주기관이 속은 것이 '누가 만드는가'라면, 그것이 '대금을 줄 것인가'에 대한 속임이기도 한가 하는 문제입니다.
4. 항소심은 "대금 지급을 속인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사기 부분을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항소심은 먼저 대법원 판례의 법리를 확인했습니다. 사기죄가 보호하는 것은 재산권이므로, 기망행위로 국가적·공공적 법익이 침해되었다는 사정만으로는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도급계약 당시 입찰 참가자격이나 계약절차에 관한 규정을 위반했더라도 그것만으로 기망행위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 위반 때문에 계약 내용대로 이행되더라도 일의 완성이 불가능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만큼 위법이 계약 내용에 본질적인지를 따져야 합니다.
편취의 고의를 판단하는 기준도 확인했습니다. 도급계약에서 사기죄가 되는지는 계약 당시 일을 완성할 의사나 능력이 없는데도 완성할 것처럼 속였는지로 판단합니다. 법원은 계약의 내용, 체결 경위, 이행 과정과 그 결과를 종합해서 봅니다.
이 기준에 따라 항소심은 다음 사정을 들었습니다.
- 판로지원법은 직접생산 여부에 따라 계약의 체결과 유지를 규율할 뿐 대금 지급을 규율하지 않는다. 담당 공무원들도 계약의 체결과 유지에 영향이 있다고 진술했을 뿐, 대금 지급에 영향이 있다고 진술하지는 않았다.
- 속인 내용은 직접생산의 의사와 능력이다. 계약이 요구하는 급부의 내용이나 제품의 품질을 속인 것이 아니고, 담당 공무원들이 그 점을 착오한 것도 아니다.
- 피고인의 의사는 하도급을 통해 계약을 이행하겠다는 것이었다. 납품할 물건의 품질이나 설치 공사의 내용에 관해 따로 속이려 한 것이 아니다.
- 회사는 하도급업체를 통해 계약에서 정한 내용과 기한에 맞추어 일을 완성했고, 납품한 목적물에 하자나 문제가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
5. "하도급이면 싸게 만든 것 아니냐"는 1심 논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1심은 하도급 생산과 직접 생산을 같게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항소심은 이 부분도 달리 보았습니다.
하도급을 주면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이 달라질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실제로 비용이 줄었다고 인정할 증거는 없었습니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회사가 정해진 계약금액으로 하자 없는 제품을 납품하고 공사를 마친 이상, 이행에 실제로 든 비용이 얼마였는지는 사기죄 성립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발주기관은 계약서에 적힌 물건을 계약서에 적힌 값에 받았습니다. 회사가 그 과정에서 얼마를 남겼는지는 대금을 편취했는지와 다른 문제입니다.
6. 속인 행위와 대금 지급 사이의 인과관계도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속인 행위 때문에 상대방이 재산을 내주었다는 관계, 즉 인과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항소심은 이것도 부정했습니다.
항소심은 직접생산 확인 제도의 취지부터 살폈습니다. 이 제도는 직접 제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중소기업자간 경쟁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는 것입니다. 발주한 일의 완성과 직접 연관된 제도가 아닙니다.
직접생산은 공공기관과 계약을 체결하고 유지할 수 있는 자격에 관한 것입니다. 계약을 체결했다고 해서 공공기관이 당연히 대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공기관은 제품에 하자가 있는지, 계약이 충실히 이행되었는지를 보고 대금 지급을 결정합니다.
항소심은 한 가지를 덧붙였습니다. 계약의 체결과 유지에 관해 속인 것으로 보더라도, 그로 인한 발주기관의 처분행위는 대금 지급이 아니라 계약 체결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얻은 것은 계약 당사자의 지위로 볼 여지가 있을 뿐입니다.
결국 편취의 고의와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아, 이 글에서 소개하는 30여 회 관급계약의 128억 원대 사기 부분에 항소심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이 결론은 판결에서 무죄로 특정한 범위에 관한 것이며 다른 유죄 부분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7. 비슷한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었다면 확인할 것들
- 계약서, 과업지시서, 입찰공고문: 계약이 요구한 급부가 무엇이었는지
- 준공검사·검수 서류, 하자 관련 기록: 계약 내용대로 이행했는지
- 대금 청구·지급 서류: 발주기관이 무엇을 확인한 뒤 대금을 지급했는지
- 하도급 계약서와 정산 자료: 누가 어떤 부분을 수행했는지
이 사건에서 결론을 가른 것은 '계약대로 이행했고 하자가 없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말이 아니라 서류로 확인됩니다. 검수 조서, 준공 서류, 하자보수 기록이 없으면 같은 주장을 해도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공소장에 적힌 편취액이 어떻게 계산되었는지도 살펴보셔야 합니다. 계약별로 무엇을 속였다는 것인지, 그것이 대금 지급과 어떻게 이어진다는 것인지를 하나씩 따져야 합니다.
자격 규정을 지켰는지와 사기죄가 성립하는지는 요건이 다른 문제입니다. 어느 부분을 어떻게 다툴지는 첫 조사 전에 변호인과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정해야 합니다. 초기 진술이 이후 수사와 재판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기억과 자료를 구별하고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Q1. 입찰 자격을 속여 계약했다면 받은 대금은 모두 사기 피해액이 되나요?
그렇게 단정할 수 없습니다. 법원은 그 위반이 계약 내용에 본질적인지, 대금 지급 판단의 기초가 되었는지를 따집니다.
다만 이 사건의 결론은 계약대로 이행을 마쳤고 하자가 없었다는 사실관계 위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행 자체가 부실했다면 결론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Q2. 담당 공무원이 "알았다면 계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술하면 사기가 되나요?
그 진술만으로 사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사건 1심은 그 진술을 근거로 삼았지만, 항소심은 그 진술이 계약의 체결과 유지에 관한 것일 뿐 대금 지급에 관한 것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발주기관이 무엇을 기준으로 대금을 지급했는지를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Q3. 1심에서 유죄가 나왔는데 항소심에서 달라질 수 있나요?
항소심은 사실과 법리를 다시 심리하므로 판단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건이 남긴 실무적 의미
수사기관은 자격을 속인 계약이면 받은 돈 전부를 편취액으로 구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무엇을 속였는지, 그것이 대금 지급과 어떤 관계인지를 나누어 봅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속인 대상이 자격이었는지 급부의 내용이었는지, 계약대로 이행되었는지, 발주기관이 무엇을 보고 대금을 지급했는지를 차례로 따졌습니다. 조사 통지를 받으셨다면 진술에 앞서 이 세 가지에 관한 자료부터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입찰·등록 관련 위반이 정당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각 죄명과 행정제재, 계약상 책임의 요건을 따로 검토해야 합니다. 관급계약 사기 등 건설·경제범죄 상담은 구체적인 공소사실과 이행 자료를 확인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관련 판단 근거
- 대법원 2020. 2. 6. 선고 2015도9130 판결
위 대법원 판결은 항소심 판단의 법리를 이해하기 위한 관련 판례이며, 이 글에서 소개한 제 수행사건 판결 자체와는 구별됩니다.